[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선친의 '차명 유산'을 둘러싼 누나와의 소송 항소심에서도 이겼다. 다만 이 전 회장 몫으로 인정된 돈은 1심 때보다 수백 억 줄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3부(이경훈 김제욱 강경표 부장판사)는 이 전 회장이 누나 이재훈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누나 이 씨가 153억5천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수십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이 지난 5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지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4.05.16 choipix16@newspim.com

1심은 이 씨가 이 전 회장에게 400억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단했었다.

이들 남매의 분쟁은 선친인 이임용 선대 회장이 1996년 사망하며 남긴 유언에서 촉발됐다. '딸들을 제외하고 아내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전 회장(이호진 전 회장의 외삼촌·2019년 작고) 뜻에 따라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특정되지 않았던 '나머지 재산'은 이 선대회장이 차명으로 갖고 있던 주식과 채권으로 2010∼2011년 검찰의 태광그룹 수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태광그룹의 자금 관리인은 2010년 10월 차명 채권을 이 씨에게 전달한 뒤 2012년 반환하라고 요청했으나 이 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전 회장은 2020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는 자신이 이 채권을 단독 상속한 후 자금 관리인을 통해 이 씨에게 잠시 맡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씨는 유언 내용이 무효라고 맞섰다.

1심은 "선대회장 유언 중 '나머지 재산'에 관한 부분은 유언의 일신 전속성(타인에게 양도하지 못하는 속성)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하면서도 선대회장이 사망한 시점부터 이 전 회장이 채권을 실질적으로 점유해 온 점, 다른 상속인이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난 점 등을 고려해 채권 소유자는 이 전 회장이라고 봤다. 이 씨에게 맡긴 채권 규모가 400억원이었다는 이 전 회장의 주장도 사실로 인정했다.

2심 역시 채권이 이 전 회장 소유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근거는 1심과 다소 다른데, '나머지 재산'에 관한 선대회장의 유언은 유효하고, 이기화 전 회장의 의사에 따라 이 전 회장이 채권을 적법하게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유언에는 그룹 경영권을 이 전 회장에게 양도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가 차명 재산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며 이기화 전 회장이 차명 재산을 이 전 회장에게 넘기도록 한 게 유언의 취지라고 봤다.

다만 이 씨가 보유한 채권의 규모로는 금융거래내역 등을 통해 명확하게 입증된 153억5천만원만 인정하며 이 전 회장에게 반환할 돈도 이 액수만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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