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발간을 둘러싼 논란이 번지고 있다.

그가 과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 등을 공개하면서 여전히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편향된 입장을 보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비난까지 다시 일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저녁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문 전 대통령은 퇴임 2주년을 맞아 재임 시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있었던 사안을 담은 책 '변방에서 중심으로'(김영사)를 지난 18일 발간했다. 

◆김정은 핵 공갈 노골화 하는데 "핵 사용 없다고 해"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언급 내용 가운데 북핵 부분은 가장 많은 비난 여론이 쏠린 곳이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 대목을 전했다.

김정은이 "나에게도 딸이 있는데 딸 세대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전언은 그 진위 여부나 실제 김정은이 언급한 발언의 뉘앙스를 떠나 현 시점에서 북한에 잘못된 사인을 주고 우리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을 허물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를 '적대'(敵對) 관계로 주장하면서 대남 선제타격이나 적화통일을 노골화 하고 있는 분위기와도 동떨어진 '흘러간 물'과 같은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김정일군정대학을 방문해 군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은 뒤편으로 서울의 모습을 본뜬 모형사판과 '괴뢰한국 주요도로'라는 지도(붉은 사각형)가 드러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4.04.11

김정은은 지난 10일 240㎜ 유도기능을 갖춘 신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고, 11~12일에는 제2경제위원회 산하 주요 군수공장을, 이어 14일에는 전술미사일 생산라인을 돌아봤는데 이는 모두 대남 타격용 사정거리를 갖춘 무기체계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7일 담화를 통해 "최근에 우리가 공개한 방사포들과 미사일 등의 전술무기들은 오직 한 가지 사명을 위하여 빚어진 것"이라며 "그것은 서울이 허튼 궁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쓰이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북 돌변에 文 전 대통령 해명 없어

문 전 대통령은 이번 회고록에서 자신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김정은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자신이 북미 대화에 대해 조언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북미 정상 간 '핵 담판'이 아무런 소득 없이 파국으로 끝난 '하노이 노딜'에는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과 단독으로 '도보다리 대화'를 하면서 나눈 내용도 공개했는데, 문 전 대통령은 "나는 북미회담을 잘하라고 얘기했고, 김 위원장은 어떻게 하면 미국을 설득하고 자기들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 김정은이 왜 하노이 노딜 이후 문 전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면서 남북관계를 경색 국면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지난 2019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뉴스핌 로이터]

이를 두고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당국과 김정은이 남북관계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변곡점이 된 상황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데 문 전 대통령과 당시 그의 참모들은 침묵하면서 책임을 현 정부에 미루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정은의 "연평도 주민 위로하고 싶다" 발언 믿어도 되나

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정은의 발언을 전하면서 "한 가지 뜻밖이었던 것은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주민을 위로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의 향후 태도나 최근의 극단적인 대남 적대감정을 감안할 때 문 전 대통령을 기만하기 위한 거짓 발언이거나 위장공세였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김정은의 최근 행보는 제2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도발을 서슴지 않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후 김정은이 서울을 답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 "(답방 시기를) '연내'로 합의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답방을 논의할 때 김 위원장은 한라산에 가보고 싶다는 뜻이 강해 여러 준비를 했고, KTX를 타보고 싶다고 해서 그 방안도 검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립서비스성 발언에 아직도 미련을 두면서 현 남북관계의 엄중성을 도외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전직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7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전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된 영상을 공개했다.[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0.06.17

 ◆김정은 거친 행동 비판하면서도 "예의 바르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정은이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을 겨냥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또 "결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20년 6월 16일 김정은과 김여정이 주도한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에 대해 "진짜 끔찍한 일이었다"면서 "나중에 언젠가 다른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게 되면 반드시 사과 받아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해 "굉장히 폭압적인 독재자로 여겨졌는데, 내가 만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고 평가해 여전히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행태에 대해 단호한 입장 표명을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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