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과세당국이 국내 증권사 6곳에서 납부받은 차명계좌에 대한 소득세를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 개설된 차명계좌의 금융자산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상 차등세율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징수한 세금이 부당이득이라는 취지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이승원 부장판사)는 삼성·KB·하나·키움·한화투자·신한투자증권이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스핌DB]

과세당국은 각 증권사들이 개설한 차명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에 대해 90%의 차등세율을 적용한 원천징수 소득세를 납세·고지했고 서울시는 관할 세무서장들의 소득세 징수처분에 비례해 지방소득세를 부과했다.

당시 과세당국은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2017년 11월 내놓은 '검찰의 수사, 국세청의 조사, 금융감독원의 검사 등에 의해 사후적으로 차명계좌임이 밝혀진 경우 해당 계좌에 보유한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세율 대상인 비실명자산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과세 근거로 삼았다.

금융당국은 같은 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에서 확인된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지 않고 세금과 과징금을 회피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해석을 내놨다.

증권사들은 관할 세무서장을 상대로 소득세 징수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과세당국은 2022년 법원의 조정 권고에 따라 각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이후 증권사들은 행정소송에서 환급받지 못한 나머지 세금 총 13억8500여만원을 반환하라며 이듬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문제된 금융자산이 금융실명법 5조의 비실명자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소득세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실명 확인 절차를 거친 계좌의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상 차등세율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사건 계좌가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계좌명의자의 실지명의에 의하지 않고 개설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원천징수 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해 90%의 차등세율을 적용한 것은 조세 채무가 성립·확정됐다고 볼 수 없어 당초 과세 처분이 없는 상태로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천징수 소득세 부과 처분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전제로 이뤄진 징수 처분은 당연무효"라며 "원고들의 납부는 원천징수 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해 세액을 징수·납부했거나 징수해야 할 세액을 초과해 징수·납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는 이를 납부받는 순간 아무런 법률상의 원인 없이 부당이득한 것이 된다"며 증권사들이 낸 세금을 반환하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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