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지난달부터 기술주 중심으로 위태로운 흐름을 보이던 주식 시장이 빠르게 확산되는 침체 공포와 함께 속절없이 무너졌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오는 9월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투자자들은 경기 침체를 막기에는 너무 뒤늦은 조치라는 평가를 쏟아냈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까지 맞물리면서 낙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월가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고, 중동 확전 가능성과 미국 대선 등 지정학적 이벤트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진 만큼 주가 조정 및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진=LSEG데이터/NYT재인용] 2024.08.06 kwonjiun@newspim.com

◆ 미국 '재채기'에 아시아는 '폐렴 증상'

지난달만 하더라도 주가 하락은 그간 고공 행진했던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중심의 밸류에이션 조정 성격을 보였으나, 이달 들어서는 연착륙 기대감이 침체 불안으로 대체되면서 본격적인 패닉장이 펼쳐졌다.

지난주 공개된 7월 미국의 고용 지표는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할 것이라는 공포와 함께 연준의 금리 인하 실기론을 불러일으켰고, 골디락스 관련 포지션들을 일시적으로 청산시키며 변동성을 키웠다.

지난 7월 미국 비농업 부문의 신규 고용은 월가 기대를 크게 밑돈 11만 4천 건이었고 실업률은 4.3%로 높아졌다.

여기에 지난달 말 이스라엘의 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 암살에 따른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의 보복 우려도 불안 심리를 키우고 있다.

뉴욕 증시 S&P 500 지수는 지난 수요일 이후 5% 이상 떨어져 2년 만에 최대 3일간의 하락을 기록했고, 비트코인 가격도 15% 내렸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5일 장중 100% 이상 급등해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냈다. 동시에 미국 국채와 스위스 프랑, 엔화 등 안전 자산은 급등했다.

일본 증시 닛케이 225 지수는 지난 주말 이후 20% 가까이 주저앉았다. 닛케이 지수는 5일 하루 동안에만 12.4% 급락해 블랙 먼데이 사건(1987년 10월)의 폭락보다 더 큰 하루 최대 포인트 하락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도 2일 3.7% 빠진 뒤 5일 8.8%가 추가 하락했다.

모넥스그룹 담당 이사 제스퍼 콜은 "(미국 지표에 대한) 시장 반응은 악화된 미국 경제 전망을 반영한다"면서 "뉴욕에서 재채기를 했는데 일본이 폐렴에 걸린 꼴"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이어 "엔화 강세는 수출로 먹고사는 일본 대기업들의 수익성을 저해할 것이며, 주식이 지금처럼 떨어질 때 몰려드는 저가 매수 세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년 가까이 인플레이션 둔화, 노동 시장 개선 및 인공지능(AI) 기대감을 바탕으로 신고점을 쓰던 주요국 주식 시장이 급격한 반전을 경험했다면서, 특히 거래량이 줄어드는 여름철에 발생해 더 갑작스럽고 심각한 수준의 변동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 불확실성 변수 산재...당분간 '주의' 필요

국제금융센터는 5일과 같은 패닉성 급락은 단시일 내 진정될 수 있으나, 경기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위해서는 경제 지표의 추가 확인이 필요함에 따라 당분간은 기존의 상승세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중동 지정학적 긴장, 미국 대선 등 불확실성 변수들이 곳곳에 포진한 점도 투자 심리의 신속한 회복을 가로막는다고 짚었다.

핌코 전 대표이자 유명 시장 논평가인 빌 그로스는 로이터와의 이메일에서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지나쳤던 레버리지와 엔화 강세, 과도한 국채 수익률 하락이 청산의 핵심"이라면서 지수가 저점에서 소폭 회복된다고 해도 거래하지 않고 있다며 "시장 변동성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내셔널 얼라이언스 증권 글로벌 채권 책임자 앤드루 브레너도 "시장은 약간 통제 불능 상태"라며 "전면적 패닉이며, 실재는 없지만 몇 주간은 고통스러운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건과 씨티, 노무라 등 투자은행(IB)들은 당분간 악화된 투심을 반전시킬 요인을 찾기가 어렵고, 투심 회복을 위해서는 빅테크 반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침체 우려에 기반한 매도세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스트앤영의 그렉 다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폭락과 관련해 "이번 반응은 과도해 보이며, 이번 주에 나올 제한적인 경제 지표나 연준과의 소통을 고려하면 이번 반응은 과도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어스틴 굴스비도 최근의 미국 고용 보고서에 대한 시장 매도는 과잉 반응이라면서, 5일 시장 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장 거품 붕괴나 시장 폭락에 직면해 있다는 명확한 신호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건전한 조정 같다"고 판단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