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원전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임박해 방폐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내년도 관련 예산은 오히려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방폐장을 마련하기 위한 선결 조건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의 처리 지연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해당 법안은 여야 간 이견으로 인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황으로,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윤 정부 들어 탄력받던 '방폐장 확보' 다시 제동…"고준위 특별법 통과 우선"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도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확보 예산'으로는 약 16억원이 반영됐다. 이는 지난해 23억원과 비교하면 7억원 줄어든 수준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예산은 지난 2017년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앞서 원자력진흥위원회는 2016년 7월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의결을 통해 고준위 방폐물을 안전히 처리하기 위한 중장기 정책 방향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당시 기본계획 안에는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과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 등을 하나의 부지에 단계적으로 확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7년에는 11억원의 예산이 반영됐지만, 이후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1~2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해당 5년은 탈원전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문제보다 원전 가동과 건설 사업 등을 중단하는 데에 더 방점을 찍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2016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부지조사 절차를 시작하려는 목적으로 11억원을 반영했지만, 이후로는 흐지부지돼 이듬해부터는 인력 운영 예산 정도만 편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2021년 12월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조속히 부지 선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110대 국정과제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고준위 특별법을 마련하겠다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와 올해 예산은 예년보다 크게 늘어난 23억원이 반영됐다. 2022년과 비교하면 약 14배 늘어난 수준이다. 이는 정부의 친원전 정책 선회와 고준위 특별법 발의 등으로 추진력을 얻어 부지조사와 문헌조사 등 연구 용역을 본격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승 기조를 더욱 증폭해야 할 시점이지만, 내년도 예산 규모는 다시 줄어들 전망이다. 관리시설 확보에 필수적인 고준위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는 이유에서다. 재정 당국은 법안이 통과되는 게 먼저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준위 특별법 통과가 지연돼서 예산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재정 당국도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어렵다는 입장이라 예산을 반영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 '적기 놓친 탓' 임시저장시설 포화보다 방폐장 건설 더 늦어…법안 처리 시급

현재 고준위 특별법은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민의힘 김성원·이인선·김석기·정동만 의원 등의 각 대표발의로 법안 4건이 올라와 있다.

앞서 고준위 특별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저장용량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가 치열해 처리 가능성이 희박하게 점쳐졌다. 임기 막판에 들어서야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는 듯했지만,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법률안(채상법 특검범)'을 둘러싼 정쟁에 불이 붙으며 결국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는 앞서 꾸준히 공론화를 진행해 온 덕에 여야 간 고준위 특별법 처리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오는 12월 첫 시추를 앞둔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여전한 갈등 불씨가 남아 있어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산중위 전체회의에서도 여야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전에 화력을 집중했다.

문제는 지지부진한 제도 기반 마련에 반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은 이미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영구처리시설이 없어 각 원전에 시설로 딸려 있는 습식저장조에 임시로 보관되고 있다. 습식저장조는 오는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차례로 포화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한빛 2030년 ▲한울 2031년 ▲고리 2032년 ▲신월성 2042년 ▲새울 2066년 순으로 포화시점이 도래한다. 약 40년 뒤에는 모든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이 한계에 달하는 셈이다.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원전 출력을 줄이거나 최악의 경우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전 비중이 줄어들며 전체 수급 관리에 비상등이 켜지는 셈이다. 또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함께 오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방폐장을 건설하는 데에는 최소 37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부지 선정에만 약 12년이 소요된다. 당장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원전 중 가장 먼저 포화에 달하는 한빛 원전의 포화 시점을 넘어가게 된다.

산업부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문헌조사 등 필수적인 연구 용역은 대부분 마친 상황으로, 내년 예산으로는 잔여 사업을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사업을 매듭짓는 수준인 만큼 당장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예산을 반영해 방폐장 확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은 많이 진척이 된 상황이다. 이제는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시점"이라며 "법안 통과 이후에는 필요 예산을 편성해 관련 위원회 구성과 부지 공고 등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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