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세제실장, 오른쪽은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공제액을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인상하는 등 25년 만에 대대적인 상속세 개편을 단행했다.

반면 관심을 모았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은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기획재정부는 25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정정훈 세제실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상속세 개편, 25년 만의 대수술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상속세 과세체계 전반의 손질이다. 

 

정부는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최저세율 10%가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현재 5개(1억·5억·10억·30억원 이하, 30억원 초과)인 과표 구간은 4개(2억·5억·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로 줄인다.

현행 1인당 5천만원인 자녀 공제액도 5억원으로 10배 올렸다. 이에 따라 자녀가 2명인 경우 최대 1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게 된다. 기초공제(2억원)와 일괄공제(5억원), 배우자 공제(최소 5억원, 최대 30억원)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이러한 개편으로 상속세 과세대상자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기재부는 이번 개정으로 약 8만3천명이 상속세 경감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거나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상속재산이 25억원이고 상속인이 배우자와 자녀 2명인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4억4천만원의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개정안 적용 시 1억7천만원으로 61.4% 줄어든다. 

 

같은 조건에서 자녀가 3명이면 상속세는 현행 4억4천만원에서 4천만원으로 4억원 줄어든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도 폐지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평가액에 20%를 할증해 상속·증여세를 부과했는데, 이를 폐지함으로써 기업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돕겠다는 것이다.

가업상속 공제 제도도 대폭 개선됐다. 특히 밸류업, 스케일업, 기회발전특구 이전 기업에 대해서는 공제 한도를 크게 높였다. 

 

밸류업·스케일업 우수기업의 경우 가업상속 공제 한도가 최대 1200억원(30년 이상 가업 영위 시)으로 확대된다.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한 기업은 한도 없이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번 상속세 개편의 배경에는 과세 대상의 급격한 확대가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중 상속세 과세 대상자 비율은 6.8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이 비율이 15%에 달해, 11년 전인 2012년(4.77%)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상속공제 한도(10억원)를 넘어선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유산취득세' 전환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실제로 받은 유산에 대해 각각 상속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체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산취득세 전환은 검토할 사항이 많아 이번 개정안에 담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목받았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내용도 최종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초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 폐지 등 종부세 추가 완화를 검토했으나,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지방재정 악화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질문을 받던 도중 정정훈 세제실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투자·고용 촉진 위한 세제 지원 확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지원도 강화된다. 국가전략기술 등 R&D 세액공제와 통합투자세액공제의 적용기한을 2027년 12월 31일까지 3년 연장한다.

통합투자세액공제의 증가분 공제율도 상향 조정된다. 현행 3%(국가전략기술 4%)에서 10%로 높아진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된다. 중소기업 유예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코스피·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은 2년을 추가해 총 7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R&D 세액공제 적용대상도 확대된다. 국가전략기술, 신성장·원천기술 R&D 공제 대상에 시설 임차료 등 비용을 포함하고, 주된 시간을 국가전략기술 또는 신성장·원천기술 R&D에 투입한 경우 투입시간만큼 안분 적용하도록 했다.


연구개발 관련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기계장치의 감가상각 기간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다.

고용 촉진을 위한 세제 지원도 개편된다. 통합고용세액공제 제도를 개선하여 계속고용과 탄력고용을 구분해 지원한다. 계속고용의 경우 고용 증가 인원에 대한 지원액을 상향하고, 탄력고용의 경우 인건비 지출 증가분에 대해 정률 지원한다.

해외자원개발투자 세액공제 지원요건도 완화된다. 내국인이 공동으로 100% 출자한 외국자회사를 통한 채굴권·조광권 등 취득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민생경제 회복 지원 강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책도 눈에 띈다. 결혼 시 신혼부부 1인당 50만원씩, 최대 100만원의 세액공제를 신설하고 주택청약종합저축 세제지원 대상을 세대주 외 배우자까지 확대한다.

기업의 출산지원금에 대해서도 전액 비과세 혜택을 부여한다. 자녀세액공제 금액도 1자녀 15만원에서 25만원, 2자녀 20만원에서 30만원, 3자녀 이상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서민과 중산층의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도 마련됐다. 수영장·체력단련장 시설이용료에 대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적용하고, 고향사랑기부금 세액공제 적용 한도를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한다.

근로장려금(EITC) 지급 대상도 확대된다. 맞벌이 가구의 소득상한금액을 3800만원에서 4400만원으로 인상한다.

청년도약계좌의 비과세 추징요건도 완화된다. 가입 3년(현행 5년) 이후 중도 해지하는 경우 이자소득 비과세 추징을 제외한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노란우산공제 소득공제 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상가임대료 인하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25년 12월 31일까지 연장한다.

건설기계 처분 시 발생하는 사업소득에 대해 다른 건설기계의 대체취득을 조건으로 처분이익 분할 과세 특례를 신설한다.

전통주에 대한 주세 경감도 확대된다. 경감대상 제조자의 기준을 완화하고 경감 한도를 높인다. 

 

탁주 제조시 첨가 가능한 원료에 향료·색소를 추가하고, 주류의 나무통 숙성시 인정되는 실감량 한도를 연 2%에서 4%로 확대한다.

이번 개정안으로 인한 세수 감소 규모는 약 4조351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돕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세원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도 포함됐다. 면세점 송객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특례를 도입하고, 관세 성실신고확인 및 월별 확정납세신고제도를 신설한다.

 

또한 OECD 암호화자산 다자간 정보교환체계 이행근거를 마련하고,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대상 업종을 확대하는 등 세원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경제계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논평을 통해 "상속세제 개편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위축된 민간 경제활력 제고와 저성장 극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세법 개정안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상속세제를 개편하려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