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만났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양자 회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720일 만에 처음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얘기 많이 듣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듣고 마는' 회담이었다.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윤 대통령이 일절 변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회담은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러나 합의문은 없었다. 다양한 의제가 논의됐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견해차를 확인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 대표도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국정기조는 옳다"고 했던 데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정작 회담장에선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컨대 이태원 특별법은 법리적 문제를 들면서 거부했고, 민생회복금과 추경 편성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이나 각종 의혹 해소, 외교·안보 기조 전환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총선 결과를 받아본 뒤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에게 국정운영 기조를 전환하라는 민심의 준엄한 요구였다. 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총선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박성준 정치부 기자

선거의 목표는 승리지만, 회담의 목표는 윈-윈 협상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합의해 정국을 주도하게 되면 3년 뒤 대권에서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다. 윤 대통령 역시 민주당의 도움 없이는 어떤 개혁 입법도 통과시킬 수 없다. 탄핵을 모면했다고 안도하며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 일도 못 한 채 남은 3년을 '식물 대통령'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통 크게 받아들여 난점을 단숨에 풀어가는 리더십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극한으로 치닫는 대결정치가 영수회담 한 번으로 협치·상생의 정치로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은 국내외 사정을 생각하면 한가한 얘기다. 당장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상황에서 국민은 고통이다. 내수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고 외교·안보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수회담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할 일이 아니다. 국면 전환용 카드로 쓰여서도 안 된다.

여러모로 아쉬운 회담이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민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 건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이 정치복원의 계기가 될지, 정국 대치만 키울지는 곧 드러난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으면 윤 대통령은 불통 이미지가 더 굳어질 것이다. 정치는 의지의 영역이다. 필연성이나 불가피성 같은 것은 없다. 윤 대통령 선택에 달렸다. 본인 의지로 수용하고 타협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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