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드디어 한국에서도 증권거래가 경쟁 체제로 바뀐다. 지난 68년간 한국의 증권거래는 한국거래소(KRX)가 독점해 왔다. 반면 금융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오래 전부터 대체거래소(ATS) 제도를 도입해 경쟁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대체거래소(ATS)인 '넥스트레이드'가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외견상으로는 거래소 복수경쟁의 모양새를 갖췄다.

실질적으로 유효경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별도의 청산 기관 없이 기존의 한국거래소가 청산 및 결제 서비스를 진행하는 부분은 금융선진국과는 다른 운영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 국내 주식 거래시간 12시간으로 확 늘어

'넥스트레이드'가 강조하는 대체거래소(ATS)의 최대 장점은 주식 거래시간이 대폭 늘어난다는 점이다. 기존의 한국거래소(KRX)는 정규장을 9시~15시30분까지 6시간30분간 운영해왔다. 또 장 시작전인 8시30분~9시까지는 시가 단일가, 그 외 시간에는 시간외 단일가로 단순하게 운용해 왔다.

반면 내년에 새로 영업을 개시하는 '넥스트레이드'는 정규시장을 8시~20시까지 12시간으로 대폭 늘린 게 특징이다. 기존의 2배에 가깝다. 또 프리마켓, 메인마켓, 애프터마켓으로 구분한 것도 특징적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지금보다 더 주식거래가 활성화 될지는 알 수 없다. 핵심은 과연 투자자들이 정규장 운영시간이 적어서 거래를 못해 왔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넥스트레이드'는 2024년 2월에 투자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설문조사 결과 거래시간이 연장될 경우 82.1%의 투자자가 "거래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하지만 설문조사와 실제 거래규모 증가는 다른 문제다. 만약 기대만큼 거래대금이 늘지 않는다면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될 우려도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지난 2016년 8월에 오후 3시 마감이던 정규장 운영시간을 오후 3시30분으로 30분간 연장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제도변화로 인해 실제 거래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는 않았었다.

대체 거래소 도입으로 분명 금융소비자의 편익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넥스트레이드'가 안정적인 수익을 낼 만큼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 수수료 절감?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혜택 미미

대체거래소 도입의 또 다른 장점은 수수료 절감이다. '넥스트레이드'는 기존 한국거래소의 수수료율인 0.0027%보다 20~40% 낮은 수수료율 적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0.0027%인 한국거래소의 수수료율 자체가 워낙 낮다.

여기서 최대 40% 할인해도 절감되는 수수료율은 고작 0.001%(P)로 미미하다. 또 이 수수료를 직접 금융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이 먼저 부담 후 이를 포괄한 주식매매수수료를 다시 금융 소비자들에게 적용한다. 그런데 지금도 이미 증권사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주식매매 수수료가 상당히 저렴하다.

 

시장점유율 1위인 키움증권의 국내 주식 매매 수수료율은 0.015%에 불과하다. 미래에셋은 0.014%, NH투자증권은 0.010%로 상당히 낮다. 이마저도 각 증권사들이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하므로 더 낮게 적용 받는 게 어렵지 않다. 결론적으로 0.001%(P)의 수수료 절감 혜택으로 금융 소비자에게 큰 이득이 돌아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매 수수료율보다 더 예민한 게 증권 거래세율이다. 증권 거래세율은 금융투자세 도입계획과 맞물려 점진적으로 인하 중이다. 2020년의 0.25%에서 2025년에는 최종적으로 0.15%까지 내려가게 된다.

2024년 현재 증권 거래세율은 주식 매매 수수료율인 0.015%의 10배가 넘는 0.18%가 적용 중이다. 대체거래소 도입으로 절감이 예상되는 수수료율 0.001%(P)와 비교하면 무려 180배에 이른다.

금융소비자들에게 대체거래소의 수수료율 인하계획이 와 닿지 않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일부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금융투자세는 해결 못 하고 또 쓸데없는 짓 한다"는 등의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 주요 선진국은 ATS 도입, 한국은 일본 모델 살펴야

한국과 달리 해외 주요국은 이미 대체거래소(ATS) 제도가 정착돼 있다. 미국 65개, EU 142개, 일본 3개, 호주 1개의 대체거래소(ATS)가 운영 중이다. ATS의 시장점유율은 최소 11%에서 최대 19% 수준이다.

한국은 특히 일본의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00년대초에 ATS와 유사한 PTS가 무려 10개나 설립됐지만 대부분 폐업했다. 현재는 3개사(Japannext, Cboe Japan, ODX)만 영업 중이다. 일본의 정규 거래소 점유율은 83%지만 ATS 점유율은 11%에 불과하다. ATS의 시장 안착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도 ATS 도입 설계 시점부터 시장수요와 니즈를 잘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망하는 사례가 생겨날 수도 있다. 유관기관 간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넥스트레이드'의 대주주는 6.64%의 지분을 가진 금융투자협회다. 주요주주로는 7대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으로 각각 6.64%씩 보유 중이다.

최근 열린 '대체거래소(ATS) 운영방안 세미나'에서 증권사 실무진들은 '최선 집행 의무'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자본시장법 상 최선집행의무는 증권사가 주문 처리 시 '여러 거래소 중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주문을 체결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금융감독원에서 2024년 2분기 안에 마련할 계획이다. 증권사들은 이 '최선집행의무'로 인해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민원이 제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거래시간이 큰 폭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인프라 및 인건비 투여로 인해 증권사들의 비용이 증가하는 점 또한 고민거리다.

◆ 한국거래소 2866억원 이익 타격? ATS 시장 안착 중요

한국거래소는 19년 전인 2005년에 기존의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등 4개 기관이 통합되어 설립된 주식회사다. 본사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다. 주주로는 교보증권 등 30여 개의 증권 및 선물회사가 88.1%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자회사로는 코스콤과 한국 예탁결제원이 있다.

 

한국거래소의 영업보고서를 살펴보면 2023년 영업이익은 2866억원(별도기준)이다. 2021년 영업이익 4037억원과 비교해보면 -29% 뒷걸음질 쳤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사인 ATS가 새로 생겨나는 게 한국 거래소 입장에서도 달가울 리 없다. 영업이익에 일부라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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