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전기차 충전기가 꾸준히 늘었지만 차주들의 체감도는 아직 미흡하다. 양은 늘었지만 90% 정도가 완속충전기이고,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급속충전기를 대폭 늘리고, 수요에 맞춰 적재적소에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3일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전기승용차 등록 대수는 43만9692대, 충전기는 35만1433기였다. 전국 기준 충전기 수 대비 차량의 비율(차충비)은 1.25로 집계됐다.

차충비는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대수다. 숫자가 작을수록 충전이 용이하다는 의미로, 충전인프라 현황 파악에 참고할 만한 수치다. 다만 충전기 설치 위치 등은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 수치에 역행하는 전기차 충전인프라 체감도

시도별 차충비는 세종(0.9)과 울산(0.92)이 낮은 편이었고 제주(2.75)와 인천(1.91)이 높은 수준이었다. 수치만 보면 국내 차충비는 세계적으로 좋은 편이지만 전기차 차주들은 충전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매년 새로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수는 증가했다. 환경부의 연도별 전기차 충전기 구축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구축된 충전기는 4만2513기였으나 2022년에는 2배 이상인 9만8504기가 새로 설치됐다. 2023년 새로 설치된 충전기는 10만104기에 달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연구용역 수행 기관인 엔지에스의 이규정 대표는 지난달 열린 제35회 자동차산업 발전 포럼에서 "우리나라의 전기차 충전인프라 구축 수준은 미국(16대), 유럽(13대), 중국(8대) 보다 우수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한 바 있다.

좋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충전 인프라에 대한 불만은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서 꾸준하게 제기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7월 전기차 이용자 225명을 대상으로 전기차 구매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1위 비추천 사유는 '충전 인프라 부족'(35.7%, 중복응답 가능)이었다.

전기차 충전기는 완속(3~7㎾)과 급속(50㎾ 이상)으로 나뉜다. 완속은 직장이나 집에서 장시간, 급속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빠르게 충전할 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완충 시간은 완속이 약 10시간, 급속은 50분~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올해 4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급속충전기가 3만9482기(11.2%)인 반면 완속충전기는 31만1951기(88.8%)다. 급속 충전기만 따지면 차충비는 크게 상승한다. 전국 급속충전기 차충비는 11.14로, 전체 충전기 차충비(1.25)의 10배에 육박한다. 

서울이나 인천, 부산 등은 전체 차충비보다 급속충전기 차충비가 10배 이상 높았다(그래픽 참고). 서울의 급속충전기 차충비는 13.76으로 전체 충전기 차충비(1.13)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인천은 급속충전기 차충비가 가장 높은 곳으로 25.03을 기록했고, 부산은 18.03으로 뒤를 이었다. 급속충전기 차충비가 낮은 곳은 경북(5.53)이나 강원(5.78) 등이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자동차 전시회에서 채비(CHAEVI) 관계자가 전기차 충전 시연을 하고 있다. 2024.04.23 mironj19@newspim.com

◆ 급속충전기 늘리고 '적재적소' 배치해야

전문가들은 충전기 수 증가에도 충전인프라에 대한 불만이 지속 제기되는 현상에 대해 공간 특성에 맞는 충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적재적소에 충전기가 배치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아파트나 직장 등에 완속을 설치하고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지에 급속을 설치하는 것처럼 공간 특성에 맞게 완속과 급속을 배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전체적으로 보면 국내 급속충전기 수가 굉장히 부족하다. (상용 등까지 합쳐) 전기차는 57만대 수준인데 급속충전기는 3~4만기 정도로 급속 비율이 낮다"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외국 사례를 보면 국내 차충비가 적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충전기가 적절한 위치에 있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보조금 지급 시점을 바꿔야 한다"며 "보급할 때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 사업자 부담으로 설치하고 이용률이 많을 때 러닝개런티 형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사람들의 이용이 많은 곳에 충전기가 설치되고 지금보다 (충전인프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이 지난 21일 전기차 충전기 분야 지원강화를 위해 충북 청주시 소재 EVSIS 전기차 충전기 제조공장을 방문해 최근 신축된 전기차 충전기 자동화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환경부] 2024.05.23 sheep@newspim.com

정부 목표는 전국 충전기를 2030년까지 123만대, 이 중 급속은 14만5000대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전기차 충전 수요가 집중돼 충전 병목이 발생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주유소 부지, 주요 물류거점 등에 공용 급속충전시설 설치 사업을 우선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전기차 충전기반시설 확충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등을 통해 민간 차원의 충전인프라 개선 노력을 유도한다는 내용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도 나왔다.

환경부 관계자는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급속충전기가 부족하다"며 "급속(충전기)이 필요한 곳에 맞춰 급속을 늘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집중 보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1일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충전기 제작업체 이브이시스(EVSIS)의 청주 공장을 찾아 업계의 고충을 청취했다.

현장에서 업계는 급속충전기 핵심 부품인 파워모듈의 국산화 지원에 대한 건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워모듈은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장치로 충전기 비용의 40%가량을 차지한다. 또 현재 3~4개월 정도 걸리는 충전기 모델의 인증 기간이 단축되기 바란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차관은 "국내 전기차 충전기 기술의 체질 개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함께 기업의 활발한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할 것"이라며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연구개발 등 기업에 필요한 현장지원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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