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1950년 6·25전쟁 당시 서해안으로 진격한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고 김명손 경사가 74년 만에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경찰청은 27일 오후 3시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김 경사에 대한 유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안장식은 경찰청 주관 하에 유가족과 윤희근 경찰청장, 박정보 전남경찰청장, 국립대전현충원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유가족 단체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경과보고, 조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영현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김 경사는 1950년 6·25전쟁 중이던 7월, 전남 영광 삼학리 전투에 참전해 적군과 교전 끝에 전사했다. 당시 전투에서는 전남경찰국 소속 200명의 경찰관이 참여해 5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입는 와중에도 진지를 사수해 북한군 6사단 1000여 명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1950년 6·25전쟁 중이던 7월, 전남 영광 삼학리 전투에 참전해 전사한 고 김명손 경사의 유해 안장식이 27일 오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됐다. [사진=경찰청]

김 경사의 유해는 2007년 발굴됐고 올해 초 국방부 유해발굴단에서 전사자 유해와 유가족 DNA 시료를 비교 분석한 끝에 신원이 확인됐다. 유해는 유가족 의사에 따라 국립 대전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유해를 찾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국가가 지속해서 전사 경찰관에 대한 현양 사업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6·25전쟁 개전 초기, 북한군의 진격에 맞설 국군의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군과 힘을 합쳐 국민과 국토 수호에 힘썼다.

김 경사가 참전한 삼학리 전투 외에도 불과 220명밖에 되지 않는 경찰관 1개 중대가 다섯 배 넘는 규모의 북한 6사단의 남하를 18시간 동안 저지한 강경전투를 비롯해 완주, 광주, 영광 등지에서 수많은 군경 합동부대와 북한군에 맞섰다.

경찰관 부대의 분투는 서부전선에서 북한군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전체 북한군의 남하 속도를 늦췄다. 덕분에 국군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서부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6·25전쟁 당시 총 6만3427명의 경찰관이 참전했으며 3131명의 사망자와 7084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제복 입은 영웅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30년 이상 근무한 경찰관에 대해 국립호국원 안장 자격을 부여하는 등 제복 공무원의 헌신에 걸맞은 예우가 이뤄지도록 한 바 있다.

경찰청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전사·순직 경찰관들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매년 6월 6일 '전사·순직 경찰관 추념식'을 비롯한 다양한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6·25 전쟁 당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다가 장렬히 산화한 전사 경찰관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그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유해발굴사업(국방부 협조), 현충 시설 정비사업(보훈부 협조) 등의 노력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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