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KDI(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금융계로 번진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본확충을 유도하는 지원과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KDI는 지난 20일 발표한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 근본적 구조개선 필요'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PF 문제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보증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국개발연구원)


◇ 부동산PF 핵심문제, 사업주체의 낮은 자기자본과 제3자의 보증 의존

최근 PF 익스포저가 급증하면서 부동산PF 문제가 금융시스템과 건설업을 포함한 실물경제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몇 십 년간 지속된 이 문제는 ▲2011년 저축은행 위기 ▲2013년 비은행권 중심 PF 익스포저 급증 ▲2019년 증권사의 대규모 채무보증 문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등을 경험하며 반복돼 왔다.

2019년 100조원 미만이였던 부동산PF 익스포저(대출+보증)가 4년 만에 160조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토지담보대출과 새마을금고 대출 등 유사 PF 대출까지 포함하면 230조 원에 달한 가운데 지난해 말 태영건설을 필두로 20개 이상의 종합건설사가 파산하기도 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현재 부동산PF의 핵심 문제는 사업 주체인 시행사가 극히 적은 자본만 투입하고 건설사 등 제3자의 보증에 의존해 부채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추진된 300여 개 PF사업장 분석 결과 시행사는 평균적으로 총사업비의 3.2%만 자기자본으로 투입하고 96.8%는 빌린 돈으로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 연구위원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진된 총액 100조 원 규모의 PF사업장 300여 개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필요한 총사업비 평균 3749억 원 중에 시행사는 자기자본을 118억 원(3.2%)만 투입하고 나머지 3631억원(96.8%)은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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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PF사업구조...건설사의 PF대출 보증과 책임준공확약

부동산 PF 사업은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반면 사업주체의 자기자본 투입은 이처럼 적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선뜻 PF대출을 내주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시행사로부터 공사계약을 수주한 건설사가 PF대출의 상환을 사실상 보증하며 책임준공확약을 체결해 어떤 상황에도 건물을 준공할 것을 약속한다.

공사 과정에서 시행사가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건설사는 자체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준공을 완료해야 한다.

책임준공확약에는 시행사가 PF대출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건설사가 대신 상환하는 조건이 부가된 경우도 많다.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낮거나 중소형 건설사인 경우 부동산신탁사나 증권사가 보증을 서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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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선진국 PF사업구조...자기자본율 30-40%

반면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에서는 부동산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이 30~40% 수준으로 높다.

미국의 경우 금융회사가 PF대출을 취급할 때 자기자본이 총사업비의 최소 3분의 1 (33%) 이상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일본, 네덜란드, 호주에서도 자기자본비율은 30~4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물론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전액 부담하지는 않는다. 시행사는 일반적으로 전체 자기자본의 최소 10%를 직접 투입하고 나머지 최대 90%는 리츠(부동산 간접 투자회사), 연기금, 건설사, 금융회사 등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조달한다.

일본, 네덜란드, 호주의 경우도 자기자본비율은 30~4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시행사는 전체 자기자본의 33~50% 정도를 직접 투입하고 나머지는 다른 지분투자자를 유치해 조달한다.

일본 도쿄의 대형 상업시설인 롯폰기 힐스는 자기자본을 37%를 아키하바라 UDX는 36%를 투입해 개발한 사례이다.

호주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자기자본비율이 20% 이하인 사업장에 대한 대출이 승인되기도 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은 25~40% 수준을 대출의 조건으로 요구했다.

2022년 이후에는 건전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은행들이 40% 이상의 비율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해외 주요국에서는 시행사가 아닌 제3자가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시행사는 다른 자산을 활용해 유사시 대출 상환을 약정하지만 건설사 등 제3자는 사업주체가 아니므로 지급보증을 제공하지 않고 기일 내 건물 준공만 약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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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방안, 자기자본비율 상향과 제 3자보증 폐지

투입 자본이 적고 수익성이 높은 부동산PF 시장을 노리는 영세 시행사들이 급증하면서 2020년 기준 등록된 시행사는 6만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자본력을 갖춘 대형 시행사는 드물고 사업성 평가는 부실하다.

이로 인해 호경기에는 대출이 몰리고 불경기에는 급락하는 변동성이 확대되며 부실이 발생하면 위기가 국민경제로 번지고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국내 PF대출 제도 개선을 위해 자기자본비율 상향과 제3자 보증 폐지가 핵심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황 연구위원은 "자기자본비율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건설사 등 제3자의 보증은 폐지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행사가 PF대출을 받을 때 일정 수준의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요구하는 '직접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회사가 PF대출을 공급할 때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간접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사업 주체가 총사업 가치 대비 최소 15%의 자기자본을 투입하지 않으면 해당 대출을 '고위험 상업용 부동산'으로 분류하고 은행이 일반 기업 대출 대비 1.5배의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규제하고 있다. 

 

황 연구위원은 “물론 자본확충 규제가 도입되면 주택공급이 일부 위축될 수 있지만 주택공급의 안정성이 개선될 뿐 아니라 보증 부담이 줄어든 건설사가 공사비를 인하해 걱정만큼 공급이 축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당장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규제 도입이 어렵다면 자본확충을 장려하는 세제지원이나 리츠 활성화 금산분리의 제한적 완화 등 지원책부터 도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부동산PF 시장을 감시해 미리 위기를 감지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공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