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검찰에 이어 경찰도 피의자 신상공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검사나 사법경찰 등 수사기관이 중대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강제로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중대범죄신상공개법(머그샷 공개법)이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1월 25일부터 시행되면서다.

머그샷 공개법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신수용 사회부 기자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4일 오후 열린 서울경찰청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박학선(65) 씨의 머그샷과 이름·나이를 공개했다. 그는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60대 여성과 여성의 30대 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수원지검은 지난 4월 김레아(26) 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별을 통보하려 한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에 김씨는 '신상정보 공개 결정 집행정지' 신청에 나섰지만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김씨는 다시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상공개엔 관련 범죄에 대한 부실한 법과 제도가 자리한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다툼이나 이별 통보 등을 이유로 연인 관계에 있던 상대를 살해하는 '교제 범죄'라는 데 있다. 현행법상 교제 범죄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없다. 최근 5년간 교제 폭력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구속된 비율은 같은 기간 2.21%에 그친다. 교제 폭력 외 교제 살인 피의자 및 구속 인원은 별도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의 교제 폭력 사건이 반의사불벌죄인 폭행·협박 범죄로 다뤄져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신상공개는 피의자의 가족과 같은 일반시민 등 제2의 피해자를 만들 위험도 있다. 신상공개는 헌법에 기본권 중 하나로 보장된 연좌제 금지 원칙도 위배한다. 신상공개가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특강법)'으로 굳어진 계기가 된 강호순 씨는 신상공개 후 헤어진 여자 친구와 아들의 신상이 털렸다. 성범죄자인 아버지의 신상이 공개되자, 10대 아들이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신상공개로 얻는 실익도 불명확하다.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2000년대부터 시행됐지만 성범죄는 오히려 늘었다.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성범죄 사건은 2013년 5971건에서 2022년 9706건으로 10년 새 62.6% 증가했다.

신상공개의 형평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씨와 같은 달 강남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대생 최모(25) 씨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최씨 신상공개 심의 당시 심의위는 "유족이 2차 피해를 우려해 비공개를 요청했다"며 신상공개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1만3939명이 교제폭력으로 형사입건됐지만 이들 모두에 대한 신상공개 심의가 열린 것도 아니다.

특강법의 주요 조항인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는 재판을 통해 증명돼야 하는 것이지 언론과 수사기관이 유죄 선고 전에 판결을 내릴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신상공개는 분노를 가해자에게만 돌려 해당 범죄를 양산한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감춘다. 공권력은 범죄 예방과 출소한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에, 언론은 기존에 제도와 정책의 흠결과 대안에 파고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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